
퇴근 시간이 임박한 아크 본부의 중앙 로비는, 하루의 고단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요원들로 인해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과 분주함은, 복도 저편에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질서이자 권위였으므로, 모두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경외가 담긴 시선으로 길을 터주었다. 그는 그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정면만을 응시하며 일정한 보폭으로 로비를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 자신만이 아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그의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랐다. 저 거대한 유리문 너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단 한 사람을 향한 조급함 때문이었다. 그의 연인, 슬화. 그녀가 자신을 마중 나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회색빛의 지루한 퇴근길은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듯 찬란하게 빛났다.
로비 중앙을 거의 가로질러, 유리문 너머로 분수대 근처에 서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채색의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존재처럼, 그녀의 모습은 선명하게 빛났다. 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앳된 얼굴의, 아마도 최근에 배치된 신입으로 보이는 젊은 요원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은 공포와 결의가 뒤섞여 혼란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감히 물의 군주 앞을 막아선 무모한 요원에게로 집중되었다. 바다는 미간을 아주 살짝 찌푸렸다. 예기치 못한 ‘변수’의 등장이었다.
저, 군주님…! 부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사적으로 짜낸 용기에도 불구하고, 요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에 작은 편지 봉투를 소중하게 쥐고 있었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고요한 눈은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았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상대의 영혼까지 꿰뚫는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그는 이 불필요한 소란을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질서 있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의 작은 파도가, 차가운 저녁 공기 속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존경해왔습니다! 처음 훈련소에서 군주님의 모습을 뵌 그날부터, 제 심장은 줄곧 군주님을 향해 뛰고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부디, 저의 이 진심을…!
절절하고 애달픈 고백이, 정적에 잠긴 로비 전체에 공명했다.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 나지막한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바다의 내면에서, 짜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미미하지만 분명 불쾌한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타인에게서, 특히나 슬화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심장과 세상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군주였다. 질서의 수호자로서, 그는 이 혼돈을 가장 완벽한 질서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나는 그대의 마음에 답할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일말의 경멸이나 조롱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완벽하게 닫힌 문과 같은, 절대적인 거절의 선언이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거절의 이유를 못 박았다.
나의 세상은, 이미 나의 유일한 주인을 맞이했으므로.
그의 대답에, 요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의 차갑고 절대적인 눈빛 앞에서 모든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요원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바닥에 떨어뜨린 채 돌아서서 도망치듯 로비를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연분홍색 편지 봉투가, 주인을 잃고 처량하게 나뒹굴었다. 바다는 그 편지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다시 유리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불필요한 변수가 제거되었다. 이제 그의 세상은 다시, 그의 유일한 주인에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고, 서늘한 저녁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그는 곧장, 분수대 옆에 멈춰 서서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을 슬화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이 거리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바다는 조금 전의 소란이 그녀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지 헤아리며, 말없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방금의 일은 그저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해야 할까. 그의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문장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서자, 슬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의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의 크고 단단한 손을,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가만히 감싸 쥐었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의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순간, 바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모든 복잡한 생각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심해처럼 고요하던 그의 내면에, 따스한 해류가 흘러드는 듯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질투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렇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바다는 자신을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짓는 연인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수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인 고백을 받았을 때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심장이, 그녀의 이 작은 행동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마주 잡은 손에 부드럽게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다정함을 담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기다리게 했군. 돌아가자, 나의 세상으로.
"이 손 하나로, 나의 모든 혼란이 잠재워졌다."
슬화는 그의 손을 맞잡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달라는 듯 손짓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주자 슬화는 그의 귓가에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바다 인기 많네요? 질투나게! 안되겠다. 다~ 보라고 꽉 붙들고 가야지!
바다의 귓가로,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달콤한 독처럼 스며들었다. '우리 바다 인기 많네요? 질투나게!' 그 말은 조금 전 로비를 가득 채웠던 불필요한 소음과, 그로 인해 그의 내면에 일었던 아주 미세한 불쾌감마저도 단숨에 정화시키는 듯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저지른 냉정한 거절이 아니라, 그 거절의 이유가 되어준 그녀의 존재에 다시 한번 집중했다. 그의 세상은, 이미 이 사랑스러운 주인에 의해 완벽하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피식하고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군주의 위엄을 지키던 차가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부드럽고 다정한 남자의 얼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녀가 그의 팔에 단단히 팔짱을 끼워오는 감촉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족쇄처럼 느껴졌지만, 그 구속은 그 어떤 자유보다도 달콤했다. 그는 오히려 그녀가 더욱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 나의 세상이 워낙 눈부셔서 다른 이들이 잠시 착각한 것뿐이지.
그의 목소리는 분수 소리에 섞여들 만큼 나직했지만, 그 안에 담긴 자부심과 애정은 그 무엇보다 선명했다. 그는 슬화의 팔짱 낀 손 위로 자신의 커다란 손을 겹쳐 잡고, 부드럽게 그녀의 손가락을 깍지 껴 잡았다. 이제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의심의 여지 없이, 완벽하게 하나로 묶인 연인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요원들이 흘끗거리며 보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더욱 당당하게 행동했다.
질투가 난다니, 그거 참 반가운 소식이군. 그럼, 모든 이들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야지. 이 한바다의 세상은, 오직 연슬화 당신의 것이라고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깍지 낀 손을 들어 올려 슬화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마치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처럼, 경건하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로비 앞을 지나던 모든 이들의 시선 속에서, 물의 군주가 그의 연인에게 바치는 공개적인 헌사였다. 그는 입술을 떼고 나서도,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작은 질투마저도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그들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행복한 사건일 뿐이었다.
자, 그럼 돌아갈까.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나의 유일한 주인과 함께. 오늘은 내가 직접 저녁을 준비하지. 어때, 마음에 드나?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내 모든 것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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