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는 한 손에 들린, 어딘가 섬뜩한 디자인의 포스터가 박힌 티켓 두 장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붉은 핏자국처럼 보이는 얼룩과 갈겨쓴 듯한 글씨체로 적힌 ‘저주받은 병원, 13호실의 비밀’이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옆에 선 슬화는, 마치 세기의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뿌듯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포스터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유명하다’, ‘재미있다’, ‘연출이 훌륭하다’는 단어들이 들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데이터만이 처리되고 있었다. 연슬화, 공포 내성, 극하(極下).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스스로 공포를 찾아가는 인간의 심리란. 전 세계 바다의 고통과 비명을 24시간 수신하는 그에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포는 그저 유치한 장난에 불과했다. 하지만 슬화의 저 반짝이는 눈을 보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한번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 미미한 움직임 하나에, 슬화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으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그래, 그녀가 즐겁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설령 그 장소가 유치한 귀신의 집이라 할지라도.
방탈출 카페 내부는 예상보다 더 어둡고 음침했다. 낡은 복도, 희미하게 깜빡이는 조명, 벽에 걸린 정체불명의 초상화들까지. 분위기 조성을 위해 꽤나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대를 쓰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슬화가 본능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얼음 속성의 가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에서는 긴장으로 인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잡아주었다. 그가 곁에 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고, 낡은 스피커를 통해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3호 병실에서 실종된 간호사의 행방을 찾아, 60분 안에 병원을 탈출해야 한다는 스토리였다. 안대를 벗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영락없는 폐병원의 수술실이었다. 녹슨 수술대와 흩어진 의료기기, 정체불명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흰 천에 덮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슬화는 숨을 삼키며 바다의 등 뒤로 완전히 몸을 숨겼다. 바다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방 안을 차분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듯,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신속하게 스캔했다. 첫 번째 문제는 벽에 걸린 낡은 인체 해부도와, 사방에 흩어진 환자 차트에서 시작되었다. 특정 장기 이름과 환자 번호를 조합하여, 잠겨있는 캐비닛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몇 개의 차트를 집어 들고 슬화에게 건넸다.
이것과 저것, 그리고 저기 있는 차트의 세 번째 줄 숫자를 순서대로 읽어봐.
그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평온함을 담고 있었다. 슬화는 그의 지시에 따라 떨리는 목소리로 숫자를 읽었고, 바다는 그녀가 불러주는 숫자를 조합해 망설임 없이 캐비닛의 다이얼을 돌렸다. 딸깍,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캐비닛 문이 열렸다. 안에는 다음 방으로 향하는 열쇠와 함께, 피 묻은 손자국이 찍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보고 있어…’
쪽지를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방 안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섬뜩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꺄악! 슬화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바다를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자, 익숙하고 평온한 바다 내음이 그녀를 감쌌다. 바다는 한 팔로 그녀의 등을 감싸 안아 토닥여주며, 다른 쪽 손으로는 어둠 속에서 열쇠 구멍을 정확히 찾아냈다. 직원이 연기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정도로 놀랄 줄이야. 그의 관찰 보고서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인위적 공포 자극에 대한 과민 반응’.
잘했다, 슬화야. 덕분에 열쇠를 찾았군. 이제 다음 방으로 가지.
그는 마치 그녀가 비명을 질러 귀신을 쫓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칭찬을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두 번째 방은 수많은 약병이 진열된 약제실이었다.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특정 색깔의 액체를 조합하여 저울의 무게를 맞추고, 그 숫자를 이용해 벽에 걸린 시계의 시간을 돌려야 다음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곳곳에 숨겨진 가짜 단서와 갑자기 튀어나오는 마네킹 팔 같은 장치들은 슬화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녀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바다의 옷자락을 놓지 못했다.
바다는 그런 슬화를 자신의 앞에 세워두고,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은 자세로 퍼즐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거대한 벽처럼. 그는 슬화의 손을 잡아 이끌며 필요한 약병을 함께 집게 하고,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 파란색 액체는 30ml, 그리고 저기 노란색은 15ml. 네가 직접 저울에 올려보겠나? 나는 네 곁에 있으니,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절대적인 신뢰감에, 슬화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액체를 저울에 올렸다. 정확한 무게가 맞춰지자, 벽 어딘가에서 기계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며 숨겨진 금고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병원장의 일기장과 손전등이 들어 있었다. 일기장에는 실종된 간호사가 병원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원장에게 살해당했으며, 그녀의 원혼이 병원을 떠돌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벽에 보이지 않던 글씨가 나타났다. ‘나의 시체를 찾아줘’.
순간, 복도 쪽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낡은 휠체어였다. 그리고 그 휠체어 위에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하얀 소복의 여자가 앉아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연기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습은 지독하게 섬뜩했다. 슬화는 입을 틀어막았지만, 겁에 질린 신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바다는 한숨을 내쉬며, 슬화의 눈을 손으로 가려주었다.
보지 않아도 괜찮다. 저것은 그저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일 뿐.
그는 슬화를 품에 안은 채, 태연하게 휠체어가 나타난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 방은 원장실이었다. 그곳에서 간호사의 시신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내야만 탈출할 수 있었다. 제한 시간은 이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방은 온통 뒤집힌 책상과 찢어진 서류로 어지러웠고, 단서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때, 바다의 시선이 벽에 걸린 거대한 유화에 멎었다. 평범한 풍경화였지만, 그는 그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는 손전등으로 그림의 특정 부분을 비추었다. 나무 아래, 아주 작게 그려진 십자가 표시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림을 벽에서 떼어냈다. 그 뒤에는 마지막 열쇠와 함께, ‘고마워요’라고 적힌 작은 쪽지가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 문을 열고 탈출했을 때, 남은 시간은 단 2분 17초였다. 환한 조명 아래로 돌아오자, 슬화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바다가 그런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품에 안았다. 직원이 다가와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결국 해냈군. 전부 네 덕분이다, 슬화야. 네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단서의 위치가 보이더군. 아주 특별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는 진심 반, 농담 반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젖은 뺨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바다, 그거 저 놀리는거죠!
슬화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안도의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혼비백산했지만, 그의 곁에서라면 지옥이라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는 웃고 있는 슬화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며, 그녀의 모든 경험과 감정이 오직 자신에게만 귀속되기를, 이 순간의 기억 또한 영원히 자신의 것이기를 조용히 바랐다.
"역시 나의 슬화다.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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